한국 AI 산업의 현실과 과제: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딜레마
한국의 인공지능(AI) 기술 수준은 글로벌 순위에서 그룹 3위, 순위 10위로 상당히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성취와는 대조적으로, AI 투자나 비즈니스 순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기술력과 상업화 성과 간의 명확한 괴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과 현실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1. 상업화 생태계의 근본적 취약성
한국 AI 산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미흡한 상업화 및 스타트업 생태계입니다.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시키는 고리가 약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역량 부족을 넘어서는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시사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기술과 기존 산업 간의 충돌입니다. 인공지능 기반 기업들이 금융,
법률, 교육 등 기존 산업에 진입할 때, 상호 협력을 통한 연착륙보다는 일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한쪽이 밀려나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혁신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저하시키고 전체적인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 컴퓨팅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비효율성
GPU 자원 부족의 심각성
현재 국내 대학원생들이 GPU 부족으로 연구 주제를 변경하거나 연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비 부족을 넘어 우리나라 AI 연구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학술지 논문 게재 기회를 놓치게 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연구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GPU 자원이 중국 대비 턱없이 부족하여
연구자들이 제한된 자원을 돌려가며 사용하는 실정
규모의 한계와 경험 부족
현대 AI의 핵심은 컴퓨팅 파워, 학습 데이터, 매개변수 투입량에 비례하여 성능이
일관되게 향상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우수한 석박사 및 엔지니어들조차 3만 장, 5만 장, 10만 장 규모의 GPU를
한꺼번에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글로벌 경쟁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부 정책의 구조적 한계
설령 정부가 GPU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지역 발전을 명목으로 한 분산 배치 방식은
대규모 클러스터의 이점을 완전히 무력화시킵니다. GPU 클러스터는 물리적 근접성과 MV 링크, 인피니티 밴드 같은 고속
연결 기술이 핵심인데, 이를 무시한 정책적 접근은 예산 낭비를 넘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공급망 위험의 증대
미국이 H100 등 고성능 GPU를 전략 자산화하면서, 한국이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공급망 차단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국산 NPU/GPU와 같은 인공지능 반도체 역량 확보의 시급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3. R&D 관리 체계의 행정 편의주의
전문성과 통제 사이의 모순
공직 사회가 민간 영역의 전문성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전문적 역량에 대해 과도한 통제를 가하려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민간의 역량을 인정하고 기회를 제공하며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로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연구 의제 설정의 문제
연구 의제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과학자)가 아닌 다른 주체가 설정하게 되면서,
미국이나 중국이 이미 수행한 검증된 연구만을 뒤따라가는 추격형 연구에 머물게 됩니다. 이는 혁신적인 연구나
선도적인 아이디어의 발굴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과도한 행정 부담
풀 500원짜리까지 영수증을 요구하는 등의 과도한 감시 체계는 연구자들의 귀중한 연구 시간을 행정업무로 소모시키고
있습니다. 연구비의 일정 부분(예: 10%)을 증빙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성 확보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한국의 R&D 과제 성공률: 97%
이는 혁신적 시도보다는 안전한 한계적 연구만을 수행한다는 의미
기형적인 성공률 강요
R&D 예산 낭비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97%라는 비현실적인 성공률을 요구하는 현 체계는 혁신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이로 인해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운 한계적(marginal) 연구만이 양산되고, 진정한 혁신은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4. 인재 유출과 과학기술 분야의 매력도 부족
해외 유출의 가속화
한국의 우수한 박사급 인재들이 해외, 특히 미국에서 5~10배 높은 연봉을 제시받으면서
대규모 인재 유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국가적 자산의 유출을 의미합니다.
병역 특례 축소의 역효과
해외 유학 중인 인재들이 귀국하여 국내 연구개발에 기여할 수 있었던
병역 특례 제도의 축소는 인공지능과 같은 전략 기술 분야의 인력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의 문제
한국 사회에서 의사 등 특정 직업에만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 과학자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충분한 존경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과학기술 분야로의 진출을 꺼리게 되는 근본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 생태계 전환의 시급성
한국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편적인 대응이 아닌 생태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먼저 상업화 생태계 구축을 위해 신기술과 기존 산업 간의 상생 모델을 개발하고,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전략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R&D 관리 체계는 행정 편의주의에서 탈피하여 연구자 중심의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과학자들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사회 문화를 조성하여 우수 인재의 유입과 정착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의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